울 엄 니(대몽댁)
[목포 공생복지재단 공생원 상임이사 이연] 어머니는 담양 백동리의 부잣집 맏딸로 태어났다. 남부러울 것 없이, 고생 한번 하지 않고 곱게 자란 어머니는 가난한 집의 6남 2녀 중 장남에게 시집을 와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결핵에 걸린 시아버지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봉양했고, 시동생들을 모두 출가시켰다. 뿐이랴. 남편은 집안일이나 경제적 활동과는 무관하게 살았고, 급기야 알코올 중독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의 연속이었지만 어머니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귀하게 자란 티를 모두 벗어던지고, 소매 걷어붙인 채 꿋꿋이 가정을 지키며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야말로 철인 같았다. 내가 어릴 적 어머니는 날마다 닭이 울기 전, 신 새벽에 일어나 돌절구에 보리쌀을 곱게 갈아 그 많은 식구들의 밥을 지었다. ‘드르륵 드르륵’ 보리쌀 가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올 때면 나는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랬던 게 습관이 되어 지금도 새벽잠이 없다. 보리밥은 단 한 번에 지을 수 없다. 돌절구로 보리를 곱게 갈아서 삶은 후 쌀과 함께 넣고 다시 불을 때야 부드러운 보리밥이 된다. 지금 밥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어머니의 보리쌀 가는 소리는
- 이연 칼럼니스트 기자
- 2021-07-08 1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