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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19혁명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실정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임한필 시민참여정치를 준비하는 광주․전남민회 위원장]

 

지난 11월 10일에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4․19혁명단체와 이용빈 국회의원 주최로 1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4․19혁명 바로 세우기 제3차 국회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국회의원 등이 함께 참여해서 4․19혁명에 대해 관습법으로만 규정되어있지만 실정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3․15의거는 4․19혁명의 원인이었으며, 4․19는 3․15의 완결이었기에 3.15의거에 대한 완전한 복원과 해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3․15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이 마산에서만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마산보다 먼저 광주 금남로에서 1960년 3월 15일 낮 12시 45분에 ‘곡(哭), 민주주의 장송’이라는 깃발을 들고 부정선거에 대한 봉기가 있었음을 알리고, 이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주장했다. 당시 광주에서는 1천2백여명의 민주당원, 시민, 학생 등이 시위를 벌였으며, 4․19혁명의 첫 신호탄이었다. 이 불길이 마산으로 옮겨졌으며 3천여명이 극렬하게 저항했다.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정·부통령선거에서 이기붕은 12년간 지속된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연장하고 자신이 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전국적으로 유령유권자를 만들어 조작하고, 관권을 총동원해서 유권자 협박, 투표권 강탈, 부정개표 등 대규모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에 저항해서 광주와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으며, 시위진압 도중에 경찰은 실탄을 발포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사망하고 총상을 입었다.

 

또한 4월 18일에는 고려대학교 대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행진 중에 폭력배에게 피습당한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4월 19일에는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었다. 결국 4월 26일에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다. 3․15의거와 4․19혁명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유혈사태로 정권을 붕괴시킨 최초의 사건이며, 부정선거와 독재권력의 횡포에 맞선 시민혁명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씌여있다. 현대사에 있어 수많은 사건 중에 유일하게 3․1운동과 함께 4․19혁명(4․19민주이념)이 언급되어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는 당강령 전문에 4․19혁명을 계승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4․19유공자가 있고 정부에서 보조금은 나오지만, 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 보상 등에 관한 실정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법령정보센터(www.law.go.kr)에서 법령 검색을 해보면 ‘5․18민주화운동’은 총 8건의 법률, 대통령령(시행령), 총리령(시행규칙)이, ‘제주4․3사건’은 총 3건의 법률, 대통령령, 대법원규칙이, ‘여수․순천 10․19사건’은 총 2건의 법률, 대통령령이, ‘민주화운동’은 총 4건의 법률, 대통령령이, ‘3․15의거’는 총 2건의 법률, 대통령령이 제정되어 있다. 특히 [3․15의거 참여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약칭 3․15의거법)] 제2조(정의)에서 ‘“3․15의거”란 1960년 3월 15일부터 4월 13일까지를 전후하여 마산지역에서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발생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당시 광주지역에서 있었던 3.15봉기는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4.19혁명에 관한 법률, 대통령 등 실정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법령에 근거해서 유공자에 대한 예우 및 보상, 단체에 대한 설립 및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3․15의거법’을 개정하여 제2조(정의)는 마산지역과 함께 광주지역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당시 광주 금남로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희생자에 대한 최소한의 명예회복을 해주는 길이 될 것이다. 또한 3.15의거에 대한 반쪽짜리가 아닌 온전한 역사적 복원과 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역사학자 카아(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라는 책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광주3․15의거에 참여했던 분들이 지금도 현존해 계신다. 조계현 당시 이필호 국회의원 보좌관, 김영용 4․19통일의병대 의병장, 유태규 광주한빛교회 원로목사 등 수많은 역사적 증인이 살아계시며, 광주3․15의거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60여년을 노력하고 계신다. 3․15의거, 4․19혁명이라는 ‘과거’의 역사가 온당히 조명되고 목숨을 바친 영령들에 대한 명예가 ‘현재’의 실정법을 통해 완결되길 바란다.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초월해서 완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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