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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이 되어 용감히 싸우겠다'…국군 최초 유격대 추모행사

육군 3군단, 인제 백골병단 전적비서 호국영령 361명 넋 기려

[제72주년 백골병단 추모행사](사진:연합)

 

 육군 3군단은 현충일을 앞둔 5일 6·25 전쟁 당시 최초의 유격부대인 백골병단 전사자와 실종자의 넋을 기리는 제72주년 백골병단 추모행사를 했다.

 

백골병단은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후퇴하던 1951년 1·4 후퇴 당시 후방지역 적에 대한 정보 수집 필요성을 절감한 육군본부에 의해 1951년 1월 창설된 한국군 최초 유격대다.

 

정식 명칭은 '육군본부 직할 결사대'였다.

 

군은 당시 대구 육군보충대에서 대기하던 젊은이들과 의용 경찰, 학생 등 7천여명 중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학력, 신체 상태 등을 고려해 800여명을 대상으로 3주간 특수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3개 연대를 창설했으나 같은 해 2월 통합한 뒤 '백골이 되어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우겠다'는 각오와 함께 병력 규모를 과장하기 위해 '백골병단'(단장 채명신 중령)으로 명명했다.

 

최종적으로 백골병단 용사 647명이 생명을 건 유격 작전에 참전했다.

 

1951년 2월부터 적 지역이었던 강원도 오대산과 설악산 일대에 침투해 3월 말까지 56일 동안 험준한 산악지형과 혹한의 날씨, 변변한 보급과 장비 지원이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약 320㎞를 이동하며 적 후방지역에서 교란작전과 첩보 수집 임무를 펼쳤다.

 

이때 획득한 주요 첩보를 활용해 적 사령부 주둔지에 공중폭격을 유도해 괴멸시켰고, 이후 아군의 북진 작전 계획 수립 때도 중요한 정보로 쓰였다.

 

백골병단은 남한 내 빨치산 총사령관을 비롯해 적 고위 군관 등 489명을 생포·사살하고, 총기 204점을 노획하는 등 수많은 공로를 세웠다.

 

이에 3군단은 1990년 11월 9일 백골병단 전적비를 건립하고, 임무 중 전사하거나 실종된 호국영령 361명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이날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열린 추모행사에는 최상기 군수를 비롯한 지역 기관장과 백골병단 참전전우회 회원, 지역 보훈 단체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1961년부터 참전전우회를 결성해 60년 넘게 선양 활동을 이어온 전인식(94) 회장이 용대초등학교 모범 학생들에게 백골 장학금을 수여해 의미를 더했다.

 

3군단 관계자는 "오로지 임무 완수만을 위해 피를 흘린 백골병단 선배 전우들의 투철한 군인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빛나는 호국정신의 표상"이라며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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